1997년 외환위기, 한국사회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구조조정의 칼날은 깊은 흉터를 남겼다. 부모가 하루아침에 실직자로 추락하는 것을 목격한 젊은이들에게 ‘도전’은 TV인기프로그램 제목일 뿐, 최고의 가치는 ‘안정’이 됐다. 취업준비생 2명 중 1명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불투명한 미래를 고민하다가 창업을 선택하는 건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여성들도 육아와 가사를 병행해야 할 경우 창업으로 돌아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1억원은 넉넉하지는 않지만 창업이 가능한 자금이다. 일반적으로 5000만∼1억원이면 주택가 인근에서 생활밀착형 점포 창업이 가능하다. 점포 규모는 10∼20평 내외. 점포비를 제외하고 3000만∼6000만원이 든다. 이 액수로 창업이 가능한 업종은 떡베이커리, 배달형 치킨전문점, 퓨전주점 등이다. 작은 점포의 단점을 테이크아웃으로 극복하는 테이크아웃 외식업종도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기에 적당하다. 총 창업자금 1억원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벌어들이는 데 성공, 평생직장의 토대를 마련한 창업자들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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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뷰티숍 ‘이지은레드클럽’ 답십리점에서 고객들이 피부관리를 받고 있다.
사진=이지은레드클럽 제공 |
>> 뷰티숍 운영 이혜영씨
◆“주부의 평생직장으로 제격이에요.”
뷰티숍 ‘이지은레드클럽’ 답십리점을 운영하는 이혜영(31)씨는 두 살 난 아이를 둔 엄마다.
2005년 10월 가게를 연 이씨의 전직은 유치원 교사. 이씨가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가 보기 안쓰럽던 차에 본인의 출산까지 계획하고 있어 안정적인 일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여성이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게 극히 제한적이다. 창업 초반 1년은 이씨가 고객상담을 주로 담당하고 어머니가 점포 안살림을 맡았다. 그러나 이씨는 결국 2005년 말 출산 이후부터 어머니에게 육아를 맡기고 점포 일에 뛰어들었다.
이씨가 들인 창업자금은 점포보증금 3000만원을 포함해 1억원. 배후에 아파트단지를 낀 3층의 28평짜리 점포를 얻었다. 초보창업이라 이것저것 부족한 것도 많고, 보통 힘들었던 게 아니었다는 이씨. 그가 가장 힘들어한 것은 직원관리였다. 뷰티숍은 서비스업종이라 마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피부관리사를 둬야 하므로 인건비 비중이 크다. 서비스의 질도 피부관리사의 숙련도와 근무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경험이 없다 보니 피부관리사들에게 휘둘리는 등 마음고생이 깊었다. 하지만 창업 2년차를 맞은 지금은 3명의 피부관리사와 가족처럼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 점포 이미지가 좋아진 것은 물론이다. 하루 평균 고객 18∼20명이 방문해 월 평균 18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순익은 인건비(약 450만원)와 임대료(165만원) 등을 제하면 700만원 선. 오픈한 지 서너 달 이후부터는 늘 이 수준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씨는 뷰티숍의 장점으로 시간 운용이 다른 업종에 비해 자유로운 점을 꼽았다.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 근무하지만 일요일과 공휴일은 쉰다.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짬을 내 필요한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성공비결은 적극적인 홍보와 정성을 기울인 상담. 은행로비에서 방영되는 TV광고를 진행했던 이씨는 현수막과 전단지 홍보는 물론이고 마을버스 광고도 수시로 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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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산물주점 ‘취하는건바다’ 시흥대야점이 손님들로 점포 외부까지 찼다.
사진=취하는건바다 제공 |
>> 해산물 주점 김애경씨
◆“힘들어도 내 점포, 내 일터니까 보람이죠.”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의 한 오피스텔. 이 건물 1층에 들어서 있는 해산물주점 ‘취하는건바다’ 시흥대야점은 주변에 익숙한 이름의 프랜차이즈 주점들이 즐비한데도 손님들로 빼곡했다. 작년 4월 점포(13평)를 연 김애경(50·여)씨가 투자한 금액은 점포보증금(3000만원) 등을 포함해 약 1억원. 16개월이 지난 지금 김씨가 올리는 매출은 월 1600만원 선이다. 월세 110만원을 비롯해 각종 비용을 제하면 450만∼500만원이 순익으로 떨어진다. 김씨는 “여름이라 매출이 조금 높게 나온 것”이라고 웃었다.
의류판매업에 종사하던 김씨가 창업시장에 뛰어든 것은 27살 난 딸의 제의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던 딸이 창업을 준비하던 중에 점포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어머니에게 동업을 요청했다. 김씨는 딸과 점포를 함께 운영하며 주방일을 보는 아주머니 한 명만을 두고 있다.
“점포부터 결정한 케이스예요. 그리고 창업아이템 자료를 모았는데 점포가 작아서 적당한 아이템이 별로 없었습니다. 해산물주점은 창업박람회에 갔다가 알게 됐는데, 점포 크기나 창업비용 면에서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결정하게 됐어요.”
김씨는 적절하게 구성된 메뉴 가격대도 안심이 됐다. 회, 무침 및 찜, 탕류, 마른안주 등이 3000∼1만3000원 선. 점포가 작아서 매출이 추가로 상승하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오피스텔 주민들이나 인근 직장인들이 꾸준하게 찾고 있어 매출 추이는 일정한 편이다.
영업시간은 오후 5시부터 새벽 5시까지. 김씨는 주방을 맡고 딸은 홀 서빙을 담당한다. 딸이 오후 5시에 출근하면 김씨는 저녁 8시쯤 나가서 마감시간까지 자리를 지킨다.
매일 새벽까지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씨는 “주점을 결정할 때부터 힘든 건 각오했다”며 “노력한 만큼 대가가 보이고, 딸과 함께 일하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