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수 씨(56·가명)는 2011년 음식점을 차리려고 했지만 상황이 암울했다. 당시 신용등급이 8등급이었던 박씨는 은행에서 번번이 대출을 거절당했다. 2금융권에서는 30%대 고금리를 요구해 눈앞이 캄캄했다.

그해 8월 미소금융중앙재단 경기도 한 지점에서 연 4.5% 금리로 창업자금 2000만원을 대출받아 소형 음식점을 열면서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2009년부터 냉면집, 장어구이집에서 주방일을 하며 배운 요리 솜씨와 오랫동안 구상한 좋은 아이템으로 그의 가게는 금세 안정을 찾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악착같이 일했다. 그는 매달 원리금 59만4938원을 성실히 갚았고 지난해 9월 모든 대출금을 상환했다.

소득이 적거나 신용이 낮아 정상적인 금융생활을 해 나가기 힘든 사람일수록 창업 생존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계에 내몰릴수록 악착같이 일한다는 '헝그리정신'의 힘이 입증된 셈이다.

12일 미소금융중앙재단이 분석한 '미소금융이용자 사업생존율'에 따르면 이 재단에서 2010~2011년 2년간 자금을 대출받아 가게를 운영한 저소득·저신용자 2만8389명 가운데 3년 이상 지난 2014년 말까지 생존한 비율은 71.2%(2만21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게를 연 10명 가운데 7명이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는 전체 개인사업자의 창업 후 생존율보다 2배가량 높은 수치다. 통계청이 2013년 발표한 '기업생멸 행정통계'에 따르면 개인사업자가 창업 후 3년 이상 생존한 비율은 38%(2012년 기준)에 불과했다. 이 같은 결과는 기존 통념과는 차이가 있다. 저신용·저소득자는 향후 대출 원리금을 연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에 제1금융권에서는 대출을 해주지 않고, 제2금융권에서도 연체 금리를 높게 책정한다. '돈을 떼이기 쉽고 사업이 망하기도 쉽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신용·저소득자의 창업 생존율이 전체 창업자보다 높은 이유는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이들일수록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신용자의 역설'인 셈이다.

미소금융중앙재단에서 대출받은 이들은 신용등급이 7~9등급으로 저신용자이거나 신용등급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다. 구직을 하기에는 기회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정부 지원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이들이 스스로 노력을 통해 자활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여기에 대출기관의 대출자에 대한 꾸준한 컨설팅도 창업 성공률을 높인 요인이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신용·저소득 창업자들이 열심히 일한 점과 미소금융재단이 창업 성공 가능성을 미리 살펴보고 꾸준히 컨설팅을 해온 것이 이들 생존율을 높인 복합적 요인"이라며 "일본도 지자체와 개인사업자를 연결해 관계형 금융 형태로 창업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임재형 미소금융중앙재단 부장은 12일 "저신용·저소득자는 소득활동이 어려워 '생계형 창업'을 한다"며 "음식점 같은 레드오션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열심히 일하면서 극복하고 지속적인 컨설팅을 받으면서 자립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월 말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기준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인 사람은 총 477만600명에 달한다. 미소금융중앙재단에서 2010~2014년 창업자금을 대출받은 이들이 5만1168명이므로 1%가량이 생계형 창업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은 초기 대출 당시 심사하면서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따져 대출을 결정한다. 또 지역별 전문위원들이 수시로 저신용·저소득 대출자의 업체를 찾아 금융 이외의 각종 상담도 하고 있다.

분석 결과 저신용·저소득자 창업 가운데 연령대가 높을수록 창업 생존율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소금융중앙재단에 따르면 20대(62%)와 30대(70.4%)의 생존율보다 50대(80.4%)와 60대(79.6%)의 생존율이 최대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임 부장은 "노년층의 경우 충분한 경험을 통해서 창업 아이템을 골라 소규모지만 안정적인 가게를 운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업종별로는 건설업, 운수업, 인쇄·출판업 등의 생존율이 높고 휴대폰 판매, 음식점, 의류 업종의 생존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설비나 건설기계, 인테리어업은 생존율이 89.4%에 달하는 반면 휴대폰·음향기기 판매 업종은 생존율이 57.1%에 불과했다. 저신용·저소득층이 많이 여는 음식점은 생존율이 66.8%를 기록해 생존율이 비교적 낮은 업종에 속했다. 김효성 기자